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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5-10-22 19:45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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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호 기자]
"장손 며느리라서 힘들지 않으세요?"
내가 장손 며느리라고 하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이렇게 묻는다. 장손에 장남 며느리라는 무거운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제법 가볍게 지내왔다. 처음 남편 따라 인사 왔을 때 느낌 그대로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
새벽 5시, 시댁에서의 첫 명절
명절 전날부터 제사 음식을 준비하느라 꼬박 하루를 부엌에서 보낸 건 결혼하고 처음 겪어본 일이었다. 새벽부터 새 밥 짓고 탕국 끓이고 조기 굽는 분주한 어머니 모습을 부엌 귀퉁이에서 졸린 눈을 부릅뜨며 지켜봤다. 어머님이 뭐라도 시주식처음시작
키면 번쩍 정신이 들었다.
친척분들 오시기 전에 차례상을 차려야 한다는 어머님 말씀에 준비해 둔 음식을 하나하나 정성껏 제기에 담기 시작했다. 커다란 제사상에 정갈하고 깔끔한 음식이 조화를 이루며 채워져 갔다. 모든 음식은 홀수로 놓아야 했고, 아버님 손길에 따라 음식을 놓는 순서와 배치가 달라졌다.
친정은 제사나 차례 최근테마주
대신 추도예배를 드렸기에 낯설고 어색한 명절 풍경이었다. 열심히 제사 음식을 나르면서도 부엌은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가스 불 세 개를 동시에 가동해도 어머님의 빠른 손놀림으로 일사불란하고 완벽하게 주방은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결혼하고 차례상을 처음 차려봤다. 조상님께 절을 하고 성묘를 다녀오면 해가 저물었주식매매시간
고, 여러 가지 명절 음식으로 이미 상다리가 휘어지는데, 어머님은 친척분들 좋아하는 다른 음식을 만들기 바쁘셨다.
드라마에서 봤던 고된 명절을 내가 겪고 있었다. 새벽에 시작한 하루는 다음 날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허리를 펴고 누울 수 있었다. 퉁퉁 부은 다리에 서글픔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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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절 차례상 새벽부터 준비한 차례음식
ⓒ 김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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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 시어머니와 요리를 모르는 며느리
명절 전후 어머님이 일을 하시거나 바쁜 일정으로 차례 음식을 못하는 경우가 생기면 머릿속이 하얘지고 정지 상태가 됐다. 한번은 어머님이 재료 준비하시다 급한 일로 외출하셨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그동안 쌓은 실력을 나름대로 발휘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재료들을 나란히 펼쳐 놓으면서 엉켜버린 머릿속 회로는 고장이 났고, 동그랗고 먹음직스럽게 만들어야 하는 동그랑땡이 길쭉한 타원형이 되었고 달걀물이 먼저인지 밀가루가 먼저인지조차 헷갈려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아버님이 다가오셨다.
"뭐 하고 있냐?""아버님, 제가 회사 일은 머릿속에 순서가 짝 그려지는데, 음식은 뭐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정리가 안 돼요."
엉망이 된 부엌 한가운데 침통한 표정의 며느리를 보고 아버님은 손수 동그랑땡에 밀가루를 묻히고 달걀옷을 입혀 지글거리는 프라이팬 위에 올려놓으셨다. 아버님은, "이것만 하고 엄마 오면 같이 하자"라고 말씀하시고 모양을 잃어버린 뒤죽박죽 동그랑땡을 술안주로 맛있게 드셨다(그날 아버님은 처음 동그랑땡을 만들어 보셨다고 했다).
아무것도 만들어 진 게 없는 부엌에서 어머님은 짧은 시간에 몇 가지 음식을 뚝딱 만드셨고, 안절부절 초조한 며느리 마음을 아셨는지 맛을 보라며 부르셨다.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다고 혼날 줄 알았던 그날 어머님은 "짜냐?", "간장 더 넣을까?", "물김치 국물 시원하니?" 잔뜩 긴장하고 있는 요리 못한 며느리를 살갑게 대해주셨다.
▲ 여러가지 전 먹음직스러운 명절 음식
ⓒ 김지호
▲ 명절 전 아삭한 배추전과 부추전
ⓒ 김지호
명절 음식은 꼬박 이틀을 부엌에서 쪼그리고 앉아 채소를 다듬고 꼬치를 만들고 만두소와 만두피를 만들어 만두를 빚는다. 거기에 색색의 전을 부쳐야 한다. 어머님은 음식을 만드실 때 친척분들 한분 한분 누가 뭘 좋아하고 잘 먹는지 기억하시면서 즐겁게 요리하신다. 맛있게 먹는 모습에 흐뭇해하시고 돌아가는 길에 꼭 음식을 챙겨 보내신다.
언제부턴가 음식 포장을 하실 때면 "워낙 식혜를 좋아해서"라며 멋쩍어하셨다. 당신이 힘들게 만드시는 동안 옆에서 덩달아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쪼그려 앉아 있던, 며느리에게 미안하셔서 그러셨던 걸 알고 있다.
여전히 혼자 명절 음식 준비는 자신 없지만, 척하면 척 어머님이 뭘 원하시는지 알아서 척척 챙겨드리는 완벽한 보조 역할은 자신 있다. 요리는 못하지만, 어머님이 만드신 명절 음식을 제일 맛있게 먹는 며느리다.
명절 기름 냄새, 대신 여행을 떠나요!
요즘은 집에서 차례상을 차리는 대신 산소를 찾아 성묘 후 부모님 모시고 여행길에 오른다.
처음 명절에 여행 얘기를 꺼냈을 때는 부모님 반대가 심하셨다. 조상님 모시는 날 무슨 여행이냐며 아버님은 크게 역정을 내셨다. 남편은 모두가 행복한 명절을 보내고 싶다며, 매년 명절이면 같은 화두를 꺼내어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가족, 친지들 만나 덕담 나누고 흥겹게 보내는 삼시세끼는 누군가의 희생과 배려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했다. 그 주인공은 어머니와 며느리 몫이었다. 종일 음식을 하고 차례상을 차리고 설거지와 동시에 다시 술상이 차려지고, 저녁을 준비해야 했다.
명절이면 최소 이틀에서 삼 일은 이런 반복적인 행위로 인해 명절 후유증이 생기고 다시 일상으로의 복귀는 쉽지 않았다. 시댁과 친정을 오가며 소모되는 체력 또한 시간이 갈수록 버거웠다.
남편의 끈질긴 설득에 아버님이 백기를 드셨고, 2022년 9월 추석에 처음으로 신안 보라섬으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어머님도 모처럼 노동 없는 명절을 즐기셨다.
▲ 부모님과 함께 떠난 명절 여행 첫 여행은 신안 보라섬 (보라색 옷을 입고 떠난 여행)
ⓒ 김지호
그 여행이 계기가 되어 이제는 명절이면 녹진한 기름 향기 대신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행길에 오른다. 온몸이 욱신거렸던 명절이 부모님과 돈독해지는 추억 여행이 되기까지 쉽지 않았지만, 불량한 장손, 장남 며느리는 남편에게 시댁 가자고 조르는 철없는 며느리가 되었다.
▲ 명절 가족여행 기름 냄새 대신 여행을 즐기는 어머니와 며느리
ⓒ 김지호
며느리는 딸이 될 수 없고, 시부모님은 친정 부모님이 될 수 없다. 그러기에 너무 잘하려 애쓰지 않고 너무 못나게 굴지 않는다면, 부모 자식의 도리에 얽매이지 않고 조금은 편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넉살 좋고 똑 부러진 며느리는 아니지만, 아버님 적적하실 때 옆에 앉아 도란도란 술친구 되어 드릴 수 있고, 어머님 푸념 사심 없이 들어 줄 수 있는 나는 장손 며느리다.
《 group 》 내향인으로 살아남기 : https://omn.kr/group/intro
'내향인으로 살아남기'는 40대 내향인 도시 남녀가 쓰는 사는이야기입니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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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 며느리라서 힘들지 않으세요?"
내가 장손 며느리라고 하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이렇게 묻는다. 장손에 장남 며느리라는 무거운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제법 가볍게 지내왔다. 처음 남편 따라 인사 왔을 때 느낌 그대로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
새벽 5시, 시댁에서의 첫 명절
명절 전날부터 제사 음식을 준비하느라 꼬박 하루를 부엌에서 보낸 건 결혼하고 처음 겪어본 일이었다. 새벽부터 새 밥 짓고 탕국 끓이고 조기 굽는 분주한 어머니 모습을 부엌 귀퉁이에서 졸린 눈을 부릅뜨며 지켜봤다. 어머님이 뭐라도 시주식처음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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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차례상을 처음 차려봤다. 조상님께 절을 하고 성묘를 다녀오면 해가 저물었주식매매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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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 봤던 고된 명절을 내가 겪고 있었다. 새벽에 시작한 하루는 다음 날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허리를 펴고 누울 수 있었다. 퉁퉁 부은 다리에 서글픔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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