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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주 기자]
▲ 30년 된 금니 30년 전 처음으로 치통과 할부의 고통을 안겨준 금니. 요즘은 치과에서 소중히 챙겨준다.
ⓒ 정현주
합자회사장점
최소 7일 보장, 최장 10일 가능.
귀하디귀한 '황금연휴' 보너스가 딸린 추석이 끝나간다. 우리 집은 출근하는 사람이 둘인데, 그들은 7일을 보장 받은 복 받은 직장인들로 오늘 오랜만에 출근했다.
나는 퇴사 후 두 번째 맞은 명절인데, 개인파산면책제도 아직도 이 한가함이 어색하다. 예전엔 명절이 다가오면 20일 전부터 선물 리스트를 만들고, 사무실로 오는 택배를 비밀스럽게 모셔놓고 은행에 들러 현금을 준비했다. 명절 사흘 전이면 직원들에게 봉투와 선물을 건네며 큰일을 마친 듯 후련했다.
그런데 퇴사하니 할 일이 없다. 가격 비교도, 취향 고민도, 봉투에 현금을 넣는 일도 사라졌다. 그 1300만원대출 렇게 긴긴 연휴 첫날, 무엇을 할까 핸드폰을 뒤적거리는데 동공이 확장되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금 이빨 삽니다'
벌떡 일어나 지갑을 열었다. 있다. 작은 지퍼백 안, 내 분신 같은 금니 하나.두 달 전 치통으로 치과에 들렀다가 신경치료를 받고, 크라운을 새로 씌워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치료를 마친 날, 데스크 간호 영어로수업진행 사가 작은 비닐을 내밀었다. 기존 치아에 일부였던 '크라운 금'이었다.
"요즘 금 시세가 올라서요. 금 보철물은 챙겨드려요."
확실히 금값이 대세인가 보다. 고작 치아 위에 덧 씌웠던 금도 이렇게 챙겨주는 걸 보면. 이걸 어디다 써야 하나 싶었지만, 다들 알아서 챙겨가신다는 말에 그냥 지갑 속에 밀어 넣었다. 초라한 내 저금리시대 치아 조각을 들여다보는 게 영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 '금 이빨 삽니다' 광고는 마치 내 마음을 읽은 듯했다.
집에 오래된 금이빨이 굴러다닌다면?치과에서 받은 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면?민망하게 금이빨 들고 팔러가기 귀찮다면?연락주세요. 집 앞까지 찾아가서 매입합니다.추석 연휴에도 출동 가능.
내 마음에 들어왔다가 나갔는지, 한 글자 한 글자가 딱 내 마음이었다. '밑져야 본전이지.' 나는 조심스레 문자를 보냈다. 아주 작은 보철물인데 괜찮을까 싶어 사진을 함께 보냈더니, 금 매입업체 직원은 "오늘 밤 10시나 내일 낮 12시 방문 가능합니다"라며 바로 답장을 보내왔다. 그날 밤 10시, 나는 지하 주차장으로 나갔다. 지퍼백 속 금니가 유난히 반짝였다.
▲ 나를 황금연휴로 만들어준 광고 한 줄 실제 광고가 아닌 인공지능으로 똑같이 문구를 만들었습니다
ⓒ 정현주
막내 작가의 월급 한 달 보름치
30년도 넘은 그때. 나는 방송국 막내 작가였다. 주 1회 방송되는 문화 프로그램의 막내로 자료를 준비하고, 취재하러 다니며 녹화 날엔 복사기가 되어 몸으로 뛰었다.
예술의 전당에서 무용공연 촬영에 합류한 어느 날, 인터뷰 섭외로 뛰어다니던 나는 이상하게 식은땀이 나고, 몸이 덜덜 떨렸다. 처음에는 긴장해서 그런가 했는데 정신이 흐릿해지고, 말도 더듬거렸다. 지금 MZ세대라면 "몸이 안 좋습니다" 한마디로 반차를 냈겠지만, 그 시절 막내의 미덕엔 그런 당당함이 없었다.
"괜찮으세요?"
홍보 담당자의 한마디에 울음이 터졌다.
"너무 아파요."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고, 어디를 가야 할지도 모른 채 택시를 타고 여의도로 향했다. 내과에 갈까 하는데, 문득 깨달았다. 입안이 욱신거렸다. 치통이었다. 그날은 내 인생 첫 치통의 날이자, 첫 금니를 얻은 날이었다. 방송국 옆 치과에서 무슨 정신으로 치료를 받았는지도 가물가물하지만, 정확하게 기억나는 건 '비용'이었다.
"이 고통을 어떻게 참으셨어요?"
<나는 솔로>에 나올 법한 젊고 잘생긴 의사는 친절했지만, 그 친절의 마지막은 계산서였다. 충치 3개 치료 중 하나는 금 크라운, 어금니라 어쩔 수 없단다.
치료비는 120만 원. 그때 내 월급은 80만 원이었는데 한 달 보름치에 해당하는 어마한 목돈이었다. 나는 발급받고 한 번도 쓰지 않은 신용카드로 12개월 할부를 눌렀다. 치통은 사라졌지만, 카드 영수증에 찍힌 1,200,000원이라는 숫자가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그렇게 나는 12개월 동안 '할부의 통증'을 겪으며 살았다. 그것이 내 첫 '금 이빨'이었다.
접선의 결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는 검은 SUV 한 대가 서 있었다.뚜껑이 열린 트렁크 안에는 탁상용 스탠드 불빛 아래 저울과 도구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3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여성은 능숙하게 장갑을 끼고 내 금니를 들여다보았다.
"연휴인데도 일을 하시네요.""지금 강원도 다녀오는 길이에요. 원래 서울만 하는데, 한 할머니께서 금니를 팔아야 손주들 추석 용돈을 줄 수 있다고 하셔서요."
그녀는 금니, 귀걸이 한쪽, 팔찌 고리처럼 작고 애매한 금만 취급한다고 했다. 나는 이빨 자국이 선명한 내 금이 저울 위에 오르내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몸무게 저울과는 달리, 무게가 조금이라도 더 나가길 바라며.
커피 한 잔 값이면 다행이겠지, 하는데
"고객님, 10만 원입니다.""정말요?"
나는 주차장이 울릴 만큼 큰 소리로 되물었다. 그녀는 오만 원권 두 장과 트렁크 한켠 귤 상자에서 소분한 귤 봉지 하나를 내주었다. 강원도 할머니가 감사하다며 한 상자 담아주신 귤이라 했다. 오늘 만나는 고객님들께 조금씩 나눠드린다고.
▲ 나의 황금연휴의 두 주인공 금니를 매매하고 받은 오만원권 두 장과 추석선물로 받은 황금 귤
ⓒ 정현주
귤과 오만 원 두 장을 품에 안고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30년 전, 나에게 치통과 할부의 고통을 안겨준 금니가 세월을 돌아 이렇게 '보은'을 했다. 남들에게는 황금연휴지만 무직자에게는 세끼가 늘어난 하루일 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진짜 황금을 얻었다. 노오란 황금 귤과 황금빛 오만 원권 두 장, 그리고 마음 한켠에 남은 따뜻한 온기.
세상은 여전히 따뜻하고, 지나간 과거는 그냥 묻히는 것이 아님을.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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