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동구짬뽕’

대기명단에 아들 이름 적는 건 유전
1인 합석 불가피… 에겐남의 위기
걸쭉하고 담백, 변화구 없는 정통파
지인에 추천 받은 맛집 대기줄 납득













짬뽕의 정석이 나타났 손오공릴게임예시 다. 구리 동구짬뽕.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짬뽕은 강렬하다. 단 2음절의 단어에 된소리가 두 개나 들어가고 각각 받침까지 달려 있다. 발음도 허투루 할 수 없다. 구강 내부에 강한 힘을 바다이야기비밀코드 실어 ‘짬’에서 입을 굳게 닫았다가 ‘뽕’에서는 입술에 힘을 주고 목구멍으로부터 끌어올린 공기를 입 밖으로 강하게 내뱉어야 한다. 입을 다물지 않아도 쉽게 발음할 수 있는 짜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단어에서부터 한국인의 기개가 온전히 느껴지는 음식이 짬뽕이다.

어렸을 적 어머니가 만든 김밥에는 항시 깨가 잔뜩 올라갔다 바다이야기꽁머니 . 나름 우리집 김밥만의 시그니처였다. 하지만 당시엔 그게 싫었다. 소풍 갔을 때 도시락통을 열면 다른 친구들 것과는 달리 내 김밥에는 김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깨가 뿌려져 있었던 게 이질감이 들었나 보다. 그 덕에 김밥 맛은 더 좋았으면서도 매번 깨 좀 뿌리지 말라고 어머니께 툴툴거렸던 철 없던 시절이 문득 떠오른다. 김밥은 더 이상 집에서 싸먹는 음식 골드몽게임 이 아닌 사먹는 음식이 돼버린 지금, 그 시절 ‘울엄니표’ 김밥이 무척 그립다.

이번에 방문한 곳에서 짬뽕 위에 한 가득 올려진 깨소금을 보며 잠시 옛 기억이 소환됐다. 뭉클한 감정이 가시기 전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김밥 좀 말아줘”라고 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웃기는 짬뽕이다, 이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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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오픈 한 시간 전 풍경. 오픈런도 쉽지 않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조선의 왕들도 군침 흘릴 맛

구리시 인창동 ‘동구짬뽕’. 인근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는 ‘동구릉(東九陵)’이 있다. 도성 동쪽에 있는 아홉 개의 왕릉이라는 뜻으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를 비롯해 9명의 조선 왕들이 이곳에 묻혀 있다. 짬뽕을 맛보지 못했던 이들이 땅 속에서 탄식을 쏟아낼 만큼 맛있는 짬뽕이 있다며 지인이 추천해 준 음식점이 이곳이다.
오픈런은 각오해야 한다는 사전 정보를 입수, 오픈 시간인 오전 11시보다 1시간 일찍 도착했다. 그럼에도 늦었다. 이미 가게 주변으로는 대기 손님들로 문전성시였다. 가게 문 앞에 A4용지가 놓여 있었고 여기에 순서대로 대기자 이름을 적는 방식이다.
내 이름을 적는 건 왠지 부끄럽다. 아들에겐 미안하지만 이럴 땐 주로 아들의 이름을 적는다. 생각해 보면 우리 아버지도 그랬다. 당신의 약을 지으면서도 약 봉지에는 항상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글씨보단 수지가 눈에 들어온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이곳에선 짬뽕이 짜장을 제치고 1인자의 위치에 올라 있다. 짬뽕의 반격이 시작됐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주말도 아닌 평일 오전에 짬뽕을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스무 번째 순번에 아들의 이름을 적고 하염없이 기다리기 시작했다. 가게 외부 전광판에 ‘1일 1뽕’이라는 메시지가 반복해서 나타났다. 예전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웃기는 짬뽕 연재를 시작해 보니 사실 ‘1주 1뽕’도 쉽지 않다. 짬뽕인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오전 11시 정각이 되자 가게 문이 열렸다. 이 집은 짬뽕 아니면 짜장이다. 사이드 메뉴는 오로지 군만두 하나. 고민할 게 없어 좋다. 메뉴판에는 짬뽕이 짜장보다 먼저 등장한다. 그만큼 주인장이 짬뽕에 자부심이 있다는 뜻. 기대감이 한층 더 높아진다.



담백한 국물, 쫄깃한 면발, 달달한 채소의 완벽한 밸런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매콤·담백·쫄깃…짬뽕의 정석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1인의 경우 합석이 불가피하다는 사전 안내를 받았다. ‘에겐남’에겐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다. 택시 합승은 해봤어도 식사 합석은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남성과 한 테이블에 합석을 하게 됐다. 짬뽕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었던 설레는 마음이 가시고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불편함이 밀려왔다.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식초를 동시에 집으려다 하마터면 손이 닿을 뻔 했다.
하지만 오롯이 맛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스스로 긍정 주문을 걸었다. 생각해 보면 공간만 함께 쓸 뿐 대화에 얽매일 필요가 없으니 오히려 서먹한 사람과 함께 식사하는 것보다 이게 더 나을 수 있다.



고소한 깨소금이 잔뜩 올라가 있는 게 이 집 짬뽕의 매력. 매콤함을 덜어주는 동시에 고소한 풍미를 더 끌어올린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기나긴 어색함의 터널을 지나 깨소금이 듬뿍 올려진 짬뽕이 나왔다. 깨소금의 고소한 풍미에서 우러난 매콤한 국물 한 입이 일단 입꼬리를 올라가게 한다. 살짝 걸쭉하지만 결코 과하지 않고 담백하다. 쫀쫀한 면발에도 국물이 잘 배어있고 채소에서도 달달한 맛이 올라와 크게 한 입 물었을 때 밸런스가 굉장히 좋다.
돼지고기뿐 아니라 오징어, 바지락 등의 해물도 들어 있다. 이 집 짬뽕을 먹고 있으면 고기짬뽕이 이렇고 해물짬뽕이 저렇다고 굳이 구분할 필요를 못 느낀다. 말 그대로 짬뽕의 표준, 짬뽕의 정석이다. 기교나 테크닉을 부리지 않는 반듯하고 올바른 맛. 투수로 치면 우완 정통파 투수다. 변화구고 커맨드고 일단 가운데만 보고 묵직한 공을 뿌리는 느낌이랄까.
왜 평일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려드는지 이해가 된다. 오랜 대기시간도 합석의 불편함도 짬뽕 한 그릇으로 모두 상쇄됐다. 이 집에 대한 이런 후기가 있었다. “태조 이성계가 다시 눈을 뜬다면 그것은 동구짬뽕 때문일 것이다.”
/황성규 기자 homer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