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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1월 창설된 국방경비대(이하 경비대)는 ‘불편부당·정치적 중립’을 표방하며 사상 검증이나 신원 조회 없이 지원자를 입대시켰다. 광복군·일본군·만주군 등 다양한 배경의 입대자 중에는 해방 전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던 사이도 있었다. 극좌 공산주의자에서 극우 청년 단체 회원까지 이념의 스펙트럼도 넓었다. 남로당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입대를 허용하는 모병 제도의 허점을 교묘히 파고들었다. 핵심 당원을 사관학교에 입교시키는 한편, 반공 경찰에 쫓기던 당원들을 조직적으로 입대시켰다.
경비대에 침투한 남로당 세포들은 건군 초기부터 군대를 흔들어댔고, 이들을 군대에서 솎아내기 위한 숙군(肅軍)도 미 군정기부터 시롯데손해보험 주식
작됐다. 1947년 5월, 이병주 소령이 공금을 빼돌려 남로당 세포 조직 확산과 무장 폭동 준비에 이용한 혐의로 청주 제7연대 연대장으로 부임하는 도중에 김창룡 소위에게 검거됐다. 일본군 헌병 오장 출신으로 육사 3기로 임관한 김창룡 소위는 이후 숙군 과정에서 행동대장으로 활약했다. 그 공로로 소장 계급 특무대장에 보임돼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고, 1956년mtn
출근길에 군부 내 반대 세력이 보낸 괴한의 습격을 받아 사망했다.
경비대에 침투한 남로당 세포들이 본격적으로 ‘반(反)대한민국 반역’에 돌입한 것은 1948년 4·3 사건 직후였다. 반란 진압을 위해 새롭게 편성된 제11연대 연대장으로 임명된 박진경 대령은 6월 18일 숙소에서 취침하던 중 연대에 침투한 남로당 세포 문상길 중위의 지령을양귀비게임설명
받은 손선호 하사에게 사살당했다.
1955년 원주의 1군사령부 사령관인 백선엽(왼쪽) 대장이 5사단장으로 부임한 박정희(왼쪽에서 셋째) 준장 등 예하 사단장의 보직 신고를 받은 뒤 격려하고 있다. /백선엽 장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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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10월 19일, 전남 여수 주둔 제14연대에서 지창수 상사를 비롯한 남로당 핵심 세포 40여 명이 장교 20여 명을 사살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대한민국 국군을 남로당이 접수해 총구를 거꾸로 돌려 대한민국을 공격한 어이없는 사건이었다. 진압 작전에 동원된 부대에서도 항명과 반역은 꼬리를 물었다. 순천 주둔 제14연대 산하 2개 중대가 남로당 세포 홍백산OPC 주식
순석 중위 주도로 반군에 합류했고, 광주에서 급파된 제4연대 병력 일부도 반군에 합류해 국군을 공격했다. 군산에서 파견된 제12연대 김응록 중위는 대대장에게 기관총을 난사한 행위가 드러나 총살당했다. 마산 주둔 제15연대장 최남근 중령은 하동 방면 반란군을 추적하다가 종적을 감췄다. 6일 뒤 진압군 사령부로 귀환한 그는 그간 반란군에 생포됐다가 탈출했다고 둘러댔다. 이후 제4여단 참모장에 임명됐으나 임지로 부임하지 않고 월북을 시도하다 대전에서 김창룡 대위에게 체포돼 처형당했다.
여수·순천 제14연대 반란이 진압되자, 김태선 치안국장은 이승만 대통령을 찾아가 그동안 경찰이 수집한 ‘이불 보따리만큼 방대한 분량’의 군내 좌익 조직 명단을 보고했다. 충격을 받은 이승만 대통령은 미 군사고문단장 로버츠 준장을 경무대로 불러 “당신네가 경비대를 만들면서 좌·우익 가리지 않고 아무나 받아들이는 바람에 군대가 이 지경이 되고 말았소. 책임을 지고 이 사태를 수습하시오”라며 불호령을 내렸다.
명단은 미국 군사고문단 하우스만 대위와 정보국장 백선엽 중령에게 전달됐고, 이후 본격적인 군 내 남로당 색출 작업이 개시됐다. 1년 반 동안 강도 높은 숙군을 통해 6·25전쟁 직전까지 장교 335명, 병사 4910명이 군대에서 불명예 제대했다. 전체 병력의 5%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남로당 세포가 조직적으로 침투했던 육사 2기생은 196명 중 34명(17%), 3기생은 286명 중 70명(24%)이 파면당했다.
육사 2기생 박정희 소령도 남로당에 가입해 활동한 사실이 드러나 체포됐다. 그러나 박정희는 군 내 남로당 조직표, 남로당의 지령 등 핵심 정보를 충실히 담은 자술서를 제출하고, 숙군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역설적으로 박정희는 남로당원이었던 덕분에 군 내 남로당 세포를 일망타진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1949년 2월 박정희는 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을 구형받았고, ‘무기징역·파면·급여 몰수형’을 선고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10년형으로 감형됐고, 형 집행 면제로 석방됐다. 불명예 제대한 박정희는 백선엽 정보국장의 배려로 문관 신분 무급 정보국 전투정보과 과장으로 일했고, 6·25전쟁 발발 이후 포병 소령으로 복직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기념식에서 사열하는 국방경비대. 여순 사건 이후 남로당 세포를 숙군한 이후에야 반공 국군으로 거듭났다. /국사편찬위원회
숙군이 진행되는 동안 영관급 고위 장교들의 탈영과 월북이 줄을 이었다. 숙군 대상에 오른 제4여단 참모장 김종석 중령은 탈영했다가 검거돼 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형장에서 죽음을 앞두고 김종석은 웃으면서 담배를 피웠고, ‘김일성 만세’를 외치고 ‘적기가’를 불렀다. 1949년 5월 제8연대 제1대대, 2대대 대대장 표무원 소령과 강태무 소령은 자신들이 지휘하던 대대를 이끌고 월북했다. 750명 대대원들은 38선을 넘은 후에야 대대장에게 속은 줄 알고 탈출을 시도했다. 382명은 탈출에 성공했으나 나머지 368명은 인민군에 체포됐다. 표무원과 강태무는 부하들을 강제 월북시킨 대가로 북한에서 ‘의거 월북 영웅’으로 환영받았다. 평양방송은 이들의 월북을 대대적으로 선전했고 “이승만 정권은 군인들의 지지조차 받지 못하고 있으니 곧 붕괴될 것”이라고 선동했다. 표무원과 강태무는 대한민국 육군총사령관을 지내고 6·25전쟁 때 납북된 송호성 준장과 함께 국군 포로들로 구성된 인민군 제22여단 지휘관으로 활동했다.
숙군은 행위가 아니라 수집된 정보에 따라 조사와 처벌이 이루어졌다. 그 때문에 정적의 무고 탓에 죄 없이 ‘파면·처벌·처단’당한 군인도 없지 않았다. 고등군법회의에 회부된 군인 가운데 20% 정도가 무죄로 석방됐고, 애국가를 부르거나 “대한민국 만세!” “이승만 대통령 만세!”를 외치면서 총살당하는 군인도 있었다. 하지만 숙군을 통해 대한민국 국군은 말단 부대까지 깊숙이 침투해 암약하던 5% 남로당 세포를 발본색월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반공 이념으로 통일된 강군(强軍)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숙군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시점에 6·25전쟁이 발발했다. 전쟁 기간 비록 개별 병사가 적에게 투항한 사례는 있었지만, 부대가 적에게 집단 투항한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훗날 백선엽 대장은 “만약 여순 사건과 숙군이 없었더라면 6·25전쟁 상황에서 국군은 어쩌면 자멸의 길을 걷었을 수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참고 문헌>
김득중, 빨갱이의 탄생, 선인, 2009
노영기, ‘국방경비대·육군의 세력 분포와 숙군’, 사림 제33호, 2009
백선엽, 군과 나, 시대정신, 2009
Allan Millett, 김광수 역, ‘하우스만 대위와 한국군의 창설’, 군사 제40호,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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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김득중, 빨갱이의 탄생, 선인, 2009
노영기, ‘국방경비대·육군의 세력 분포와 숙군’, 사림 제33호, 2009
백선엽, 군과 나, 시대정신,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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