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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비를 걱정하라던 워싱턴(Washinton) 주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더운 나날이 이어지던 중 멀게만 느껴지던 산불을, 기어이 만나 고야 말았다.

이날은 화이트주식재테크
패스(White Pass)에서 팩우드(PackWood) 마을로 내려가 휴식하는 날이었다. 전날 트레일 데이즈에서 안면을 텄던 일본인 하이커, 딤플(dimple)과 섹시(sexy)를 오랜만에 만났고, 자세한 이야기는 화이트 패스에서 하자며 인사를 나눈 탓에 아침부터 무척 걸음이 바빴다. 그런데 작은 개울에서 처음 보는 하이커가 먼저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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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까 ‘화재 폐쇄 알람’을 받았는데, 너희도 받았어? 바로 앞에 화이트 패스부터 치눅 패스(chinook Pass)까지 오늘 아침부터 산불로 폐쇄됐대.”



멀리서 보이는 레이니어 산. 워싱턴을 대표하는 산으로 유명하다. 사진을 찍었던 이때까지만 해도 앞으로이엠코리아 주식
닥칠 일은 꿈에도 모른 채 평화롭게 길을 걷고 있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내일 걸어야 할 길이 오늘 폐쇄가 됐다는 말도 안 되는 소식이었다. 이미 타버린 산불 지대는 여럿 지났지만, 지금 불이 나고 있는 지역을 눈앞에서 마주하다니 겁이 덜컥 났다. 공지를 보니 이날 아침이었던, 9월 2일 오바다이야기 사이트
전 10시를 기해 폐쇄 명령이 내려져 있었다. 
산불의 규모는 9월 2일 아침 기준으로 약 1273에이커(약 515만1648㎡, 155만8300여평)로 주변 지역의 이름을 따서 ‘Wild Cat Fire’라 이름이 붙었다. 원인은 전날 내리친 마른 벼락이었다.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작은 규모의 산불과 합쳐져 몸집도 더욱 커진 듯했다. 폐프로그램매수
쇄된 트레일은 41㎞ 남짓이었다. 산의 고도가 높아지자 저 멀리서 피어나는 연기가 마치 거대한 구름처럼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지금 어떤 상황인지 실감 났다. ‘산불이 여기까지 오면 어떻게 하지?’ ‘우회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등 이런저런 걱정이 들었다. 



먼 곳에서 발견한 화재 연기 모습. 마치 큰 폭발이 일어난 듯한 연기 모습은 한눈에 보아도 심상치 않다.


속도는 왜 이리 안 나는지. 30㎞ 거리를 10시간 가까이 걸어 목적지인 고속도로 한 편의 화이트 패스 주유소 상점에 도착하니 섹시와 딤플을 비롯한 여러 하이커들이 복잡한 표정으로 여기저기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곳은 하이커들을 위해서 충전, 야영, 휴식이 가능한 공간을 제공하고 있어서 많은 이들이 들르는 곳이다. 산불을 피해 걸어서 갈 수 있는 우회로는 없었고, 이곳에서 치눅패스로 바로 이어지는 123번 도로도 함께 폐쇄돼 차로 넘어가려면 길을 크게 돌아가야 했다. 차로도 1시간 30분 이상 소요되는 먼 거리를 히치하이킹해야 한다는 막막한 기분이 모두를 휘감았다.   
그나마 트레일 폐쇄 소식에 인근에 살고 있는 트레일 엔젤(자원봉사자)가 발 빠르게 이곳을 찾아왔다. 오늘 상점에 도착한 순서대로 종이에 이름을 써두면 내일 오전부터 차에 태워준다는 것이었다. 출발은 왕복 시간을 감안해 오전 8시, 오후 2시 두 번이었다. 일단 우리의 이름은 딤플 덕분에 제법 앞 줄에 올라가 있었다. 20분 떨어진 마을에서 자려는 우리라도 내일 오후 12시까지 여기로 돌아온다면 내일 확실히 차를 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위해 딤플과 연락처를 교환하고 함께 차를 타자고 약속하며 내일을 기약했다.  



숙소 근처에서 만난 엘크(Elk). 사슴과에 속하는 동물로 이곳에서는 한국의 고라니와 마찬가지로 민가에 자주 내려온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딤플의 재보급 일정에 차질이 생기면서 트레일 엔젤의 차를 탈 수 없게 되는 비극이 벌어졌다. 그 사이 섹시는 폐쇄된 트레일을 걸어보겠다며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믿을 수 없는 결정이었다. 
그렇게 떠난 섹시의 안부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우리의 처지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였다. 하는 수없이 140달러를 내면 차를 태워준다는 다른 트레일 엔젤과 접촉해 보았다. 딤플과 우리 부부를 비롯해 2명만 더 모으면 1인당 28달러에 탈 수 있는 차였다. 2시간에 걸쳐 다른 이를 찾았지만, 다른 하이커들은 아무도 우리의 제안에 응하지 않았다. 이 방법도 실패한 셈이다. 
우리에게 남은 수단은 ‘엄지손가락’를 드는 것뿐. 이때 시간은 4시 20분이었다. 딱 5시까지만 히치하이킹을 해보고 차가 잡히지 않으면 여기서 하루 더 자고, 본래 타려고 했던 트레일 엔젤에게 도움을 구하자 마음먹은 뒤 함께 도로에 나섰다. 20분간 지나가는 이 차 저 차에게 열렬히 손을 흔들고 있을 때였다.



마을에서 함께 화이트 패스로 돌아오는 길에. 태어나서 처음 트럭 짐칸에 타본다던 딤플은 적극적인 성격 덕분에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즐거운 PCT 종주를 하고 있었다.


건너편에서 하이커를 내려준 차가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차에 탄 노부부가 “근처 마을인 나치스(Naches) 북쪽에 사는데 분기점에서 내려줘도 되겠냐”며 말을 건넸다. 우리는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기에 서둘러 “괜찮다”라고 답하고 트렁크에 짐을 실었다. 그렇게 30분을 달려 분기점에 다가오자 “혹시 괜찮으면 치눅 패스까지 데려다주고 싶다”며 말도 안 될 정도로 고마운 제안을 해왔다. 이쯤 되니 고마움을 넘어서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우리를 치눅 패스까지 데려다준 나탈리아 부부와 함께. 본래 아웃도어 활동을 즐겨 하는 이 부부는 이날도 근처에서 등산을 즐기고 돌아가는 길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감사 인사를 거듭하며 달리다 보니 오후 6시 반 무렵이 되어서 치눅 패스에 도착했다. 이곳은 공기 냄새부터 달랐다. 화재 지역과 가까운 탓에 탄 내를 머금은 공기와 타고남은 재들이 우리를 반겼다. 패스 입구와 3.2km 떨어진 호숫가에는 우리처럼 길을 넘어온 하이커들이 가득했다. 폐쇄 구역을 뚫고 온 섹시도 무사히 우리와 합류해 자신의 무용담을 들려주었다. 간혹 하이커들 중에는 타는 불길을 뛰어넘어서면서까지 무리하는 이들도 있다고 하던데 그에게 이런 시련은 없었다니 다행이었다. 



치눅 패스에서 본 화재 지역의 모습. 미국 산림청과 소방서 등에서 담당자들이 나와 현장 상황을 관리하고 있었다.


폐쇄된 길을 잘 넘었다고 고생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 텐트 안팎으로 소복하게 쌓인 재와 여전히 매캐한 공기는 아직도 우리가 화재의 영향권에 있음을 상기시켰다. 일부 하이커들은 손수건을 마스크처럼 쓰고 걷기도 했다. 화재 연기로 해는 하루 종일 뿌옇게 가려져 제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튿날까지 50㎞ 넘게 걸은 뒤에야 연기와 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산불은 그 후로 10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타고 있으며 규모도 3배 이상 커졌다. 화재 진압률은 10%에도 미치지 못해 언제 진화될지 알 수 없는 상태다. 그동안 지나쳐온 몇몇 산불 지대를 떠올리면 이곳의 아름다운 자연이 이렇게 쉽게 스러져버린다니 너무나 아쉽고 속상한 기분이 얼마 남지 않은 여정에 생각거리를 안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