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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집 앞에 흰색 쏘나타 한 대가 도착했다. 아버지가 결혼 1주년 선물로 사주신 차였다. 아버지 앞으로 들어온 축의금을 “너희를 위해 쓰는 게 의미 있다”며 따로 두셨다가 차를 사주셨다. 차량번호를 보니 사위 생일 숫자로 조합한 번호였다. 뭔가 세심한 아버지의 흔적이 느껴졌다.
차종을 결정한 건 어머니였다. 나는 경차나 아반떼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신형 쏘나타를 고집하며 색상과 옵션만 고르라 했다. 그렇게 선물로 받은 차가 15년이 지났는데도 주행거리는 5만5000㎞에 불과했다.
지난여름 그 차를 팔고 보냈다.
닥터클럽 지난 5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이것저것 정리할 게 많았다. 그중 어머니가 더 이상 차를 소유하지 않겠다고 하셔서 그 일도 더해졌다. 세금과 유지비 때문이면 대신 내드린다고 하는데도 더 이상 운전 안 하시겠다고 하셔서 처음엔 어머니 차 매매를 알아보았다. 생각보다 매매가가 높지 않자 나에게 차라리 그 차를 갖고 오래된 쏘나타를 처분하는 게 어떻겠냐고 권하셨 시중은행들이 다.



아이가 어렸을 때 그 차에서 필자와 함께했던 장면.


생애 첫 차, 태어난 딸아이를 처음 태운 차… 등 인생의 여러 가지 뜻깊은 순간이 깃들고, 아버지가 선물로 준 각별한 의미가 있는 차였다. 하지만 모든 추억을 새마을금고 자소서 다 실물로 끌어안고 살 수는 없다는 걸 알기에 차도 정리하기로 했다.
차를 팔기로 하고 아버지를 모신 추모공원에 다녀왔다. ‘차를 팔 거라고’ ‘차 선물로 주셔서 잘 탔다고’ ‘더 좋은 데 모시고 갔어야 하는데 아산병원만 모시고 간 것 같아서 죄송하다고’ ‘감사했다고’ ‘아버지가 엄마에게 사준 차를 내가 또 탈 거라고’ ‘엄마에겐 차값을 연체대출금 드릴 거라고’…. 아버지는 아무 말 없었지만 “쏘나타 팔지 말고 누군가에게 주라” 하셨을지도 모르겠다.
차는 중고차 앱으로 편리하게 팔았다. 시세보다 100만 원쯤 더 비싸게 팔았다. 몇 푼 더 받아서가 아니라 아끼던 차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 같아서 그냥 흐뭇했다. 평일 하루 휴가를 내고 탁송 기사님을 기다리며, 기사님이 드실 물과 간식 햇살론 승인률 을 조금 준비해서 차에 두고 냉방을 조금 해두었다. 그게 내가 이 차를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었다.
15년 동안 큰 사고 없이 잘 탔다. 내가 몇 번 뒤에서 살짝 박은 적이 있었는데 상대 차주들이 다 너그럽게 넘어가 주었다. 처음에는 장롱면허였지만, 2018년 딸아이를 인천영어마을에 6개월 동안 데리고 다녔더니 애 영어는 안 늘고 내 운전이 늘어버린 해프닝도 있었다.



중고차 앱에서 보내준 인사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딸아이가 3년의 유학 생활을 위해 프랑스로 출국하던 날, 공항에서 돌아오는 길에 화창한 날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눈물이 쏟아졌던 것.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날 라디오에서 흘렀던 레퀴엠,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 영안실에서 돌아오며 ‘세상의 모든 음악’에서 흘러나오던 ‘Life Itself Will Let You Know’를 들으며 울던 그 길이다.
스마트폰 사진첩을 보니 차를 타고 다니던 어린 딸아이와 지금보다 젊은 시절의 내 모습이 가득했다. 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이동하며 쌓아온 시간과 이야기, 웃음과 눈물이 담긴 공간이었다.
가끔 옛 쏘나타와 같은 차종을 길에서 마주치면 괜히 반갑다. 그 차창 너머 많은 순간들이 오버랩되어 보이곤 한다. 나는 오래된 차를 보냈지만, 그 차가 실어 나른 모든 기억들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달리고 있다.
이미란(롯데문화재단 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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